머리를 끄덕인 이준석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저녁 여섯시에 이태원 사거리에

머리를 끄덕인 이준석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저녁 여섯시에 이태원 사거리에 내려놓으면 돼요그렇다면 씻기고 새옷으로 갈아입혀야겠습니다무표정한 얼굴로 말한 한정규가 응접실을 나갔다 소파에 기대앉은 이준석이 어두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은 바로 담장이어서 그저 시커먼 어둠으로 덮여 있을 뿐이다한동안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던 그는 이윽고 손을 뻗쳐 전화기를 쥐었다 이제는 도청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밤바람은 차가웠고 가끔씩 물기가 부딪쳐 선뜩한 촉감이 왔다눈발이 여 있는 것이다 목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원은 규모가 작았지만 조깅 코스에 각종 운동 시설이 잘 갖춰졌고 잔디밭도 깨끗이 다듬어졌다그러나 열두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공원은 짙은 적막에 덮여 있었다 드문드문 세워진 보안등도 하나 건너씩 소등시킨 것은 IMF를 맞아 전력을 절약하려는 것이다잔디밭 앞쪽의 벤치로 다가간 이준석은 다시 팔목시계를 보았다 야광바늘이 열두시 십오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코트의 깃을세운 그는 주머니에 두 손을 넣었다 보안등이 오십 미터쯤이나떨어져 있었으므로 이곳은 어두웠다꼼짝 않고 서 있는 그의 몸은 먼쪽에서 보면 공원의 시설물 중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 오분쯤 그런 상태가 계속된 후였다돌바닥에 찍히는 구두굽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더니 점점 또렷해졌다몸을 돌린 그는 오른쪽의 자전거용 도로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보았다 보안등빛을 등뒤로 받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긴 코트를 입은 여자였다이준석이 두어 걸음 그쪽으로 발을 떼자 여자는 그제서야 그를본 모양이었다 여자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뛰기 시작했다 이준석이 그쪽으로 다가갔고 그들의 사이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그녀는 김혜 인이다잔디밭 안쪽의 등빛에 서로의 얼굴이 드러났고 김혜인이 눈을한껏 치켜떴다 달려온 김혜인이 와락 이준석의 가슴에 부딪치며그의 상반신을 안았다그녀가 그냥 얼굴을 가슴에 묻고만 있었으므로 이준석은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칼 냄새를 맡았다 연한 향내가 코를 통해 뇌를자극하면서 금방 목구멍이 좁혀지는 듯한 느낌이 왔다 이제는밀착된 김혜인의 가쁜 호흡을 느낄 수도 있었다이준석은 가슴에 안았던 김혜인의 어깨를 잡아 조금 떼어놓았다 김혜인의 성난 듯도 하고 마악 울 것 같은 얼굴이 보였다039IGV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이준석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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