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있는 것이다 헌종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안제학을 보았다 안제학은 왕의 밀서를 품고 달려 온 것인데 헌종은 아직 밀서를 거들 떠도 보지 않았다 조선 백성은 물론이고 관리들까지 금에 투항한다던데 조선 왕은 내버려두고 있는가 아 아니옵니다 엎드린 안제학의 이마에 땀방울이 배어났다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사오며 붙잡힌 투항자는 목을 베고 있소이다 거짓말이다 압록강과 두만강 쪽 사군 육진의 초소는 이미 텅 비어서 국경은 없어졌다 백성들은 그저 강만 건너면 되는 것이다 입술을 비튼 헌종이 옆에 선 환관 왕직을 보았다 조선왕의 긴 글은 듣기에 귀찮다 읽고 요약해서 말하라 예 폐하 비단 주머니에 싼 밀서를 펴든 왕직이 주욱 훑어보더니 머리를 들었다 폐하의 건강을 축원했소이다 흥 조선은 대 명의 신하로서 천년 만년 복속할 것을 맹세 했소이다 흥 그 때 궁 밖이 어수선해지더니 곧 명의 병부상서 우경이 입을 열었다 폐하 산해관에 주둔했던 금 군이 남하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늘어져 있던 헌종이 놀라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눈이 크게 뜨여져 있다 남 남하하다니 도원수는 어디 있는가 군사를 정비하여 대응하겠다는 전령이 왔소이다 어허 헌종이 마른 침을 삼키더니 그때서야 조선 사신을 의식한 듯 손을 저었다 조선 사신들은 물러가라 퍼뜩 머리를 든 안제학은 헌종의 두 눈에 초점이 잡혀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객사로 돌아온 안제학이 기운 없이 방에 앉았을 때 부사 박시윤이 따라들어섰다 박시윤도 안재학과 함께 황제를 배알하고 나온 참이다 명의 조정이 발칵 뒤집혔소이다 털썩 앞에 앉은 박시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예조 참판이니 당상관이다 황제가 벌벌 떨지 않았습니까 안재학이 시선을 돌렸으나 박시윤은 정색했다 조선왕의 서신을 환관에게 읽혀 대충 요약해서 말하라고 하다니요 이런 수모를 앞으로도 당해야 합니까 그리고는 박시윤이 뱉듯이 말을 이었다 금의 군사가 남하했다는 말에 황제가 벌벌 떠는 꼴을 보니 오장에 막혀있던 체증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소이다 대감께선 그렇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머리를 든 안재학이 박시윤을 보았다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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