녁 무렵이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건너편 빌딩은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정면의 커다란 유리창이 깨어져 있었으나 겨울이 다가도록 그대로였다 전에는 외국상사의 지점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비어 있었다 1층의 현관 위에 한쪽으로 기울어져 걸려 있는 영문 간판이 보였다매운 양념을 넣은 양고기 스프를 떠 먹던 한세웅이 문득 머리를 들었다실비아 우리 여행이나 갈까그릇에 고기를 담던 실비아가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에릭이 싱글거렸다지난번엔 바빠서 제대로 여행도 못했는데 어때신혼여행은 아테네에서 사흘간 머물다가 돌아왔을 뿐이다실비아는 좋겠군에릭이 고기를 입에 넣으면서 장난스레 말했다바쁘지 않아요삶은 양고기와 쌀밥을 그릇에 담아 앞에 내려놓으면서 그녀가 물었다 얼굴이 환해졌고 말소리가 가벼웠다모두 잘하고 있으니까한세웅이 에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괜찮겠지여행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2주일쯤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카말하고 핫산이 있으니까어디로 갈 작정인가잠자코 고기를 뜯던 어머니가 물었다이태리하고 스위스 그리고 프랑스로 한바퀴 돌아오렵니다 시간이 있으면 영국도 한 번 들려보구요어머니가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띄웠다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이태리 여행을 했었지 로마와 밀라노 베네치아를 가보았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어머니는 생생한 기억을 식탁 위에 쏟아놓기 시작했다 반년 전에 만일 그녀가 화려했던 옛 추억을 끄집어 냈다면 말하는 자신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참담해져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나 듣는 가족들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다 물론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닌 모양으로 살짝 얼굴을 돌린 에릭이 어머니 모르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한세웅은 쌀밥에 섞은 양고기를 잠자코 씹어 삼켰다 그리고는 채소를 한웅큼 입에 넣었다 매운 고추가 들어 있어서 혀가 얼얼 하였다믿기지 않았어요 당신이 여행가자고 했을 때침대에 누운 한세웅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실비아가 말했다잠옷의 어깨끈이 흘러내려 그녀의 부드러운 어깨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행복해요그녀의 머리칼이 탁자 위의 붉은색 조명등의 빛을 받아 반짝이며 윤기를 내었다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나두 이젠 내 자식들에게 이태리의 추억을 자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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