걋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의 거만한 말투 때문일 것이다 알았어요 하지만 만약에 그 해결책을 못 찾아낸다면요 라파엘은 자켓을 집어들어 어깨에 걸치고는 한 손으로 아나리자의 손을 잡고 집을 향해 걸어가게 시작했다 그때는 죽는 날까지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이 길고 지겹고 따분한 것이 될 거요 그날 저녁 아나리자는 평상시보다 훨씬 정성을 들여 외출 준비를 했다 길고 윤기나는 브론드 머리카락은 북유럽 여차들처럼 하나로 묶고 입고 나갈 옷은 회색빛을 띤 하얀 드레스로 정했다 낙낙하게 늘어져 있는 터틀식 컬러 주름이 접혀 있는 소매 그다지 사람의 눈을 끄는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딱 달라붙은 웨스트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스커트가 여성으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마음에 들어하고 있던 옷이었다 액세서리로는 금색 벨트와 자그마한 금 브로치를 달았을 뿐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매끄럽게 햇볕에 그을은 피부에는 화장이 필요 없었고 큰 눈과 길고 짙은 속눈썹에 아이샤도우와 마스카라를 바르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장미빛 립스틱을 칠하고 있을 때 현관벨이 울렸다 아나리자는 립스틱을 내려놓고 서둘러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문을 연 아나리자의 모습을 라파엘은 말 그대로 훑어보았다 금색 샌들을 신고 있는 발 끝부터 하나로 묶은 머리카락 끝까지 저런 오늘밤은 다른 남자들로부터 질투와 부러움을 살 것 같은데 아나리자도 라파엘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검은색 정장에 새하얀 와이셔츠 빳빳이 풀 먹인 컬러가 감싸고 있는 목은 갈색으로 그을러 있었다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것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남자다왔다 그렇게 되면 다른 여자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에요 아나리자는 그에게 쏘아붙일 생각이었지만 라파엘은 그런 그녀의 태도가 우스웠는지 크게 소리내어 웃는 것이었다 어쨌든 일시적이나마 휴전 상태로 돌입되었다 아나리자는 웬지 그의 거만한 태도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초조해졌고 13년 전의 그 일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수치심과 유감이 반씩 섞여 있는 이 기묘한 기분은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분노로 타오를 것이다 현관밖에는 재규어라는 이름의 스포츠카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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